<2025 김대중평화회의 기조연설: “평화경제: 세계와 한반도를 위한 전략”>
-제임스 로빈슨 美시카고대 교수
-2025년 9월 24일, 호텔현대 바이 라한 목포
시카고대 교수로 재직중인 제임스 로빈슨입니다.
제 연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게 주어진 제목은 ‘포용적 경제제도, 포용적 정치제도, 민주주의와 경제성장, 그리고 이것이 평화경제학과 어떻게 연관되는지’였습니다. 특히 김대중평화회의에서 포용적 정치제도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 민주화 운동의 주역 중 한 분이셨습니다. 한국에서 투옥과 망명, 사형선고를 겪고, 수십 년간 민주주의와 포용, 정치적,·경제적 포용을 위해 투쟁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연구라기보다는 그의 생 자체였던 제 연구에 대해 여러분께 말씀드릴 수 있다는 것은 저에게 큰 영광입니다.
자, 이제 번영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괜찮으시다면 먼저 제가 정말 즐겨 논하고 연구하는 주제인 한국의 경제 기적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약 70년 간의 세계 각국의 1인당 국민소득 추이를 보여주는 그래프를 보시겠습니다. 미국이 최상위에 위치해 있으며, 1950년 이후 견조한 경제성장을 보여주고 있죠. 물론 페르시아만에는 더 부유한 국가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카타르나 아랍에미리트의 1인당 국민소득은 훨씬 높습니다. 홍콩이나 싱가포르 역시 훨씬 높은 편이죠. 무역경제국들이지죠.
그런데 제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의 실로 놀라운 경제 성장입니다.
저는 한국과 북한을 자주 비교하는데요, 맨 아래에서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을 보실 수 있습니다. 1년에 약 1,000달러~2,000달러 정도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빈국 수준과 비슷합니다. 반면 한국은 이제 일본을 추월했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연 4만 달러를 넘습니다.
아시다시피 실제 수치는 물가 차이 등을 어떻게 보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만, 한국은 이제 OECD 국가입니다. 1인당 국민소득 수준이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유럽연합 회원국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죠. 이 도표에서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중국이 부상했음도 보실 수 있는데, 이 데이터에서 중국의 국민소득은 한국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한국의 경제적 성공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한국의 경제적 기적은 거의 한 세대라는 매우 짧은 기간에 모든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세계 경제사에서 전례 없는 사건이었죠. 경제학자는 경제 성장을 이끄는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할까요?
1950년대 로버트 솔로(Robert Solow)의 발언 이후, 경제학자들은 한국에서 일어난 놀라운 변화와 같은 경제 성장을 이끄는 요인이 기본적으로 ‘혁신’이라는 데 동의했습니다.
인간의 생산성은 신기술의 개발과 도입으로 높아집니다. 제 조국인 영국의 산업혁명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18세기 후반에 시작되어 19세기 초에 확산된 산업혁명은 온통 혁신이었습니다. 공장 시스템의 발명이 핵심이었죠. 아담 스미스(Adam Smith)가 위대한 저서 ‘국부론’에서 핀 공장에 대해 언급한 것을 기억하시나요? 핀 제작을 여러 작업으로 나누는 공장 내 분업이 생산성을 크게 높인다는 내용이었죠. 면화 가공, 방적, 직물 직조 등의 제조 과정의 기계화, 즉 기계로 방적하고 직조함으로써 사람들이 생산할 수 있는 직물의 양이 엄청나게 증가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증기 엔진으로 구동되었습니다. 새로운 동력을 발명한 것이죠. 제임스 와트(James Watts)가 개발한 증기 압축 기술은 기계를 구동하는 증기엔진의 효생산성을 엄청나게 높였습니다. 재화를 시장에 운반하는 새로운 운송 수단인 철도와 철제 선박 등이 등장했습니다. 이 모든 새로운 발명은 인간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새로운 방법들이었죠.
1950년대 로버트 솔러(Robert Soler)는 경제성장을 해체하여 이것이 성장의 동력임을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에 대해서도 이렇게 생각하면 될까요?
한국의 경제 기적을 설명하는 데 이 이론을 적용할 수 있느냐 묻는다면 저는 당연히 그렇다고, 증거가 있다고 답할 것입니다. 혁신과 관련하여 혁신에 투입되는 요소와 산출물을 생각해볼 수 있겠죠. 여기 투입이 있습니다. 투입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혁신에 특화된 인력의 수입니다. 혁신은 어디에서나 발생하죠. 사람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다가 아이디어를 떠올리므로 혁신은 여러 곳에서 이루어지지만, 사회가 혁신에 얼만큼의 노력을 들였는지는 연구개발 전문 인력이 얼마나 되는지로 알 수 있습니다.
이 수치는 인구 기준으로 정규화 되었는데, 보시다시피 한국은 유네스코 데이터가 집계된 최초연도인 1995년 미국보다 낮은 수준에서 시작해 급상승합니다. 미국보다 낮았던 수준에서 두 배, 아니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죠. 따라서 한국은 인구 대비 세계 어느 나라보다 혁신과 연구개발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있는 것이죠. 물론 미국과 중국은 훨씬 더 큰 국가들이므로, 예컨대 중국의 연구개발 인력이 한국보다 더 많겠지만, 인구 규모 대비로 보는 것이 사회가 혁신에 집중하는 역량의 합리적 척도가 되겠죠. 한국은 놀라울 정도로 잘하고 있습니다.
혁신의 산출물은 무엇일까요?
경제학자들은 이를 특허로 측정합니다. 아이디어나 새로운 혁신을 생각해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하지요?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특허를 출원합니다. 특허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겠지만, 특허는 경제학자들이 각 사회의 혁신성을 측정하는 아주 흔한 척도입니다. 도표에서 볼 수 있듯, 한국의 특허 출원은 1980년대에는 미미한 수준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한국의 특허 출원은 엄청나게 증가했어요. 이 척도로 볼 때 한국은 인구 규모 대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사회 중 하나입니다. 미국, 중국, 그 어느 곳보다 훨씬 더 혁신적이죠. 특허는 혁신의 산출물입니다. 한국의 특허 출원은 경제 기적과 더불어 급증했습니다.
이해가 되시나요? 저는 학자라서 지적 혁신도 보게 되는데, 한국에서도 지적 혁신이 이루어졌죠.
과학 기술지에 게재된 학술논문을 보면 한국은 인구 대비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한국 과학이 부상했고, 한국에 진정한 지적 활동이 존재하며, 이 기간 동안 해당 활동이 급속히 성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해하셨지요? 그리고 수출 이야기도 안 할 수 없습니다.
저는 항상 한국이 놀랍도록 다각화된 경제이기도 하다고 말해 왔습니다. 다각화가 한국의 혁신의 일부이기도 하다는 점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1970년 가발 제작을 위한 인모 수출이 한국 수출의 10%를 차지했습니다. 가장 비중이 큰 수출 품목은 의류와 합판이었어요. 그러니까 수출 품목의 폭이 매우 좁았고, 천연자원 기반이었죠. 아름다운 한국인의 머리카락도 이에 포함된 것이죠. 그런데 변혁의 결과, 지금은 한국이 정말 놀라울 정도로 폭넓은 수출 기반을 갖추게 되었어요.
한국의 변혁의 또 다른 매우 흥미로운 점은 한국의 변혁이 불평등에 미친 영향이었습니다.
지난 40년에서 50년간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일어난 거대한 변화 중 하나는 바로 불평등의 엄청난 심화였습니다. 지금 보시는 도표는 세계은행이 내놓은 소득 불평등에 관한 데이터로, 지니 계수로 측정된 것입니다. 보시다시피 이 데이터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2005년 이후의 기간만 다루고 있죠.
한국의 소득 불평등에 대해 두 가지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첫째, 한국의 지니 계수가 매우 낮습니다. 거의 독일 수준으로, 미국이나 라틴 아메리카 등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국가들보다 훨씬 낮습니다. 브라질, 콜롬비아 등 많은 국가들이 여기 해당하죠. 세계에서 불평등 수준이 가장 높은 나라일 남아프리카도 그렇고요. 한국의 소득 불평등 수준은 이러한 국가들에 비해 낮습니다.
낮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매우 일관적으로 낮죠. 보시다시피 지난 20년간 한국의 소득 불평등 수준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측정할 수 있는데, 한국의 계층별 국민소득 비중에 대한 데이터 시리즈는 1980년대 것까지 활용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한국의 소득 상위 10% 계층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인지 보는 거죠.
이것은 불평등의 흔한 척도입니다. 상위 계층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클수록 사회가 더 불평등한 것이죠. 국민소득의 35%가 상위 10%에게 돌아갑니다. 이는 중국보다 낮고, 약 45%인 미국보다도 낮습니다. 브라질은 약 60%,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국민소득의 65%가 상위 10%에게 돌아가죠.
다시 말해, 한국은 상대적으로 평등한 편이며, 평등 수준이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45년 간 32%, 33%에서 35%, 36%로 증가했을 뿐입니다.
극적인 경제 변혁이 있었지만, 불평등이 크게 증가한 것처럼 보이진 않죠. 특히 이는 중국이나 미국에서 동기간 보인 불평등 증가 유형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그러니까 한국은 불평등 확대가 실로 미미한 상태에서 이 경제 기적을 이룬 것이며, 이는 상당히 놀라운 성과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한국은 어떻게 상대적으로 낮은 불평등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혁신적이고 경제적으로 역동적인 사회가 되었을까요? 바로 포용적 경제제도를 구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요? 제도, 경제제도란 경제 부문에서 인센티브와 기회를 규율하는 규칙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포용적이라는 특정한 속성을 지닌다고 말할 수 있는 경제제도의 매우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앞서 특허를 언급했으니 다시 특허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구체적으로는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의 전구 특허에 대해 이야기해 보죠. 1880년 에디슨은 전구에 대한 특허를 취득했습니다. 그렇죠? 자, 특허란 무엇일까요? 특허는 경제제도입니다. 특허는 결국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는 규칙입니다.
우리는 혁신을 통해 자신에게 부를 창출하지만, 아이디어는 복제하기가 매우 쉽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발명을 보고 모방하기 시작하면 그들 역시 부를 창출하게 됩니다. 따라서 모든 혁신가는 자신이 누리는 것보다 사실상 훨씬 더 많은 부를 창출하는 것이죠.
따라서 특허의 개념은 지적재산권을 보호함으로써 개인의 인센티브를 사회적 인센티브에 가깝게 만드는 거죠. 이해되실까요? 따라서 특허란 인센티브를 창출하는 경제제도인 셈입니다. 예를 들어 이 시기의 미국 특허제도가 흥미로운 점은 이 제도가 포용적이었다는 점, 즉 일종의 공정한 경쟁의 장을 기반으로 했다는 거죠. 이는 누구나 자신의 아이디어를 보호받기 위해 특허를 신청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모두가 동일한 수수료를 지불했고, 국가가 여러분의 지적재산권을 지켜주죠.
자, 그렇다면 에디슨이 왜 그렇게 중요한 인물일까요? 에디슨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의 아버지는 지붕 공사업자였고, 그는 홈스쿨링을 받으며 자랐죠. 에디슨은 엄청난 에너지와 창의력을 가진 인물이었죠. 한때 그의 이름으로 등록된 특허가 천 개가 넘었어요.
그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사회학적으로 볼 때 혁신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혁신은 사람에게서 옵니다. 사람들의 창의성, 아이디어, 프로젝트, 열정에서 비롯되는 것이죠. 그런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 흩어져 있어요. 당신이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듯, 정부도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포용적인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잠재된 재능이 발현될 수 있도록, 그들이 아이디어를 보호하기 위해 특허를 출원할 수 있도록,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그들의 재산권을 보호할 수 있도록, 법치주의, 즉 법원을 활용하여 그들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사업과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는 매우 폭넓은 인센티브와 기회 측면에서 말이죠. 사회 내 모든 잠재적 인재가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특허가 있어야 하며, 특허는 큰 중요성을 갖는 혁신 분야에서 포용적 경제제도로서 훌륭한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습니다.
한국의 사례로 돌아가서, 포용적 제도로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자동차나 전화기 같은 것들만 제공되는 게 아닙니다. 저에게는 이런 것들의 문화적 측면도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단순히 경제적 현상에 그치지 않습니다. 물론 경제적 현상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문화적 현상이기도 하죠. 그리고 이 두 가지는 당연히 상호 연관되어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웨스턴, 할리우드, 코카콜라, 청바지 등 문화 전체가 미국의 경제적 성공, 확장과 연결되어 있지요.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혁신은 다양한 영역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데, 한국에서도 정확히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K-뷰티, K-드라마, K-팝, 그리고 오늘 주제와 관련된 K-민주주의까지 말이죠.
좋습니다. 그러니까 포용적 경제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저희 책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아시모글루(Acemoglu) 교수와 저는 포용적 경제제도를 그 반대 개념인 착취적 경제제도와 대조하였습니다.
착취적 경제 제도의 예는 무엇일까요? 제가 한반도를 매우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한반도에 포용적 제도와 착취적 제도가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정확히 착취적 경제 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북한의 경제제도는 포괄적 인센티브와 기회를 창출하지 않죠. 북한의 제도는 집권당과 지배 세력과 연관된 사람들에게만 인센티브와 기회를 제공하며,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은 인센티브와 기회에서 완전히 배제됩니다. 이것이 빈곤을 초래하죠. 포용적 경제 제도는 혁신과 번영을 창출합니다.
자, 그런데 이런 제도들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예컨대 한국은 왜 북한보다 더 포용적인 경제 제도를 갖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 또한 명백합니다. 이는 정치적 과정의 결과입니다.
여기서 민주주의가 등장하게 되는데요, 우리는 사회가 포용적 정치제도를 구축할 때 포용적 경제제도가 출현한다고 말합니다. 제도를 만드는 것은 정치입니다. 포용적 정치제도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하나는 정치 권력의 광범위한 분배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민주주의를 떠올릴 수 있죠. 저희 초기 연구에서는 민주주의를 많이 다루지 않고, 역사적 사례를 많이 논의하려 했었지요.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다소 시대착오적이라고 할 수 있죠. 우리는 정치 권력의 광범위한 분배를 강조합니다.
또 다른 차원은 '역량을 갖춘 국가'입니다. 예를 들어 특허법을 시행하려면 충분히 강력한 국가 제도가 있어야 합니다. 제가 강조하는 바는, 특허법을 제정하면 지적재산권이 보호되지만, 국가가 실제로 이를 시행할 수 있을 때만 효과가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사회를 규제하고 특허법 등을 집행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이나 권력을 가진 국가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정치적 권력의 분배가 핵심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국가가 누구의 이익을 위해 운영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집단적 이익을 위해 운영되길 바란다면 국가는 집단성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정치적 권력이 폭넓은 기반을 가져야 합니다.
이는 특정 상황에서 그러합니다. 잠시 후 중국에 대해 이야기할 때 다시 언급하겠지만, 우리가 착취적 제도라고 부르는 체제 아래서도 성장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성장은 일시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1970년대와 1980년대의 한국도 그런 상황이었죠. 앞서 특허 데이터에서 보여드린 한국에서의 진정한 혁신의 급격한 확대는 민주주의로의 전환과 진정한 포용적 제도가 확립된 이후에야 이루어졌습니다.
이해되실까요? 이것은 선거 민주주의 지수인데, 1980년대 후반부터 민주주의로의 거국적인 전환이 시작됐지만, 실제로 민주주의가 공고히 자리잡은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마침내 정권을 잡은 1990년대 후반, 1998년의 일이었죠.
아시다시피 이 기간 동안 한국의 민주도가 세계 평균보다 낮았던 수준에서 세계 평균보다 훨씬 더 높거나, 심지어 아시아 평균보다도 훨씬 더 높은 수준으로 전환하는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 연구에 따르면 민주화, 즉 민주주의로의 전환은 1인당 소득이 현저히 더 높아진 것과 연관성을 갖습니다. 이 도표가 좀 어렵게 보이실 지 모르겠는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화가 이루어진 국가들도 있고, 또한 민주주의에서 벗어나는 방향으로 변화한 국가들도 있지요.
그 시기는 모두 다르겠지만, 민주주의로 전환한 모든 국가를 살펴본다고 가정해 보세요. 저는 모든 것을 일종의 기준점인 '0'으로 정규화 했습니다. 즉, 서로 다른 시점에 민주화된 여러 국가들, 1982년의 아르헨티나, 다른 시점의 필리핀, 한국 등을 모두 취합해서, 모든 국가가 민주화된 시점을 기준 시점 '0'일로 설정하는 거죠. 그러면, 민주화가 발생한 후 1인당 소득이나 개발 지표가 크게 증가하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해되실까요?
한국 사례를 좀 더 전문적인 방식으로 분석해볼 수도 있습니다.
한국 사례를 확대해서, 어떤 의미에서는 데이터를 플롯팅해 볼 수 있겠지요. 이 모든 하늘색 점들은 우리가 데이터를 보유한 전세계 모든 국가들의 데이터 포인트입니다. 저는 여기서 한국 데이터만 추출해낸 거죠.
좋습니다. 이 한국 데이터를 보시면 적색 원은 모두 민주화 이전 시점이고, 녹색 원은 민주화 이후의 시점입니다. 그리고 보시다시피 우측에 있는 이 점들의 군집, 즉 한국이 민주화된 이후의 관측값들은 좌측의 관측값보다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그렇지요? 여기에는 변이가 있어서, 어떤 부분, 1983년이나 1987년 같은 시기에는 상당히 빠른 경제 성장률을 보입니다. 하지만 이 두 군집을 비교해 보면, 우측 군집, 즉 민주화 이후의 한국이 좌측 군집에 비해 상당히 높은 성장률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두 요인 간의 연관성, 즉 이 상승 곡선이 시사하는 바는 한국이 민주화 이후 경제적으로 더 빠르게 성장했다는 겁니다. 우리 연구 결과도 이 사실을 충실히 입증하고 있죠.
이해되실까요? 포용의 결실은 다양합니다. 제가 K-팝이나 K-뷰티 등에 대해서도 언급했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예시 중 하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임기 중에 일어난 변화입니다. 약간 불명확한 부분이 있어 보이지만, 일부 사람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 변화를 시작했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이 문제를 깊이 연구하지는 않았으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을 때, 즉 대통령직을 맡았을 때, 한국은 금융위기를 겪었고 IMF 시기를 겪었죠. 한국이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했냐 하면 국민들이 금을 내놓았습니다. IMF에 돈을 갚기 위해 각자 금을 내놓은 거죠.
정말 놀라운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영국이나 미국이라면 이런 일이 가능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겠어요. 이것은 한국인이 사회와 자신을 얼마나 깊이 동일시하는지를 말해준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한국인이 당시 민주화 과정에서 구축되고 있던 포용적 사회에 진정으로 동참하고자 했으며, 그 사회에 기여하고자 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정말 매력적이죠.
좋아요, 간단히 말해서 이론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북한에서는 제가 '착취적 경제제도'라고 부르는 것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는데, 이는 빈곤을 초래합니다. 북한이 착취적 경제제도를 가진 이유는 착취적 정치제도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정치적 포용의 결과 포용적 경제제도로 전환했고, 결국 번영한 OECD 국가가 되었죠. 이해되실까요? 이 도표는 매우 단순화되어 있지만, 사실 다양한 사회의 역학관계와 번영이 착취적 경제,·정치제도에서 포용적 경제제도로의 전환을 수반함을 보여줍니다. 저희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그러한 전환의 강제 변수라 할 수 있는 것은 정치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을 생각해 보세요. 그가 무엇을 했고, 어떻게 살았는지를요. 그는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고, 독재를 무너뜨리고, 정치 체제를 개방하며, 국민의 참여와 대표성을 보장하기 위해 싸우는 데 일생을 바쳤습니다. 이게 핵심이죠. 소련 붕괴 이후 우크라이나, 폴란드, 동유럽에서 민주주의가 등장한 것, 영국에서 민주주의가 대두된 것도 다 이렇게 이루어진 것이죠.
경제적 변화를 주도하는 이러한 정치적 힘,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사회 구성원들이 조직화되어 변화를 이뤄내고 정치적 포용을 이뤄냄으로써 경제적 포용과 경제 성장을 심화시키는 것 말이죠. 많은 것을 말씀드릴 수 있지만 시간이 제한되어 있으니, 중국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은 어떠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이 화살표가 무엇을 암시하는지 아시겠어요? 중국이 1970년대 착취적 경제제도에서 훨씬 더 포용적인 경제제도로 전환했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중국의 경제성장을 촉발한 것입니다. 등소평이 권력을 잡은 시기였죠. 아시다시피, 등소평은 사회주의 경제를 해체하기 시작했습니다. 국민에게 인센티브와 기회를 허용하고, 국민이 스스로 결정하게 하고, 그 결정에 대한 권리를 인정함으로써 인센티브를 창출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매우 빠른 경제 성장률로 이어졌지요. 따라서 이는 또 다른 착취적 성장의 사례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한국의 박대통령 지휘 하의 경제성장을 착취적 경제성장이라고 규정했어요.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착취적 경제성장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소련입니다.
제가 1980년대 초 런던정경대학교(LSE) 학생이었을 때 우리는 여전히 이렇게 배웠습니다.
급속한 경제성장을 원한다면 국가 계획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말이죠. 이것은 소련이 이룬 것과 같은 것을 의미했지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어요. 지난 세기 최고의 경제학자 중 한 명인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은 저서에서 소련이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예측했죠.
그는 1961년도에 출판된 그의 교과서에서 소련이 2000년에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제가 1967년도본까지 살펴봤는데, 기본적으로 도표는 동일합니다. 1970년도본으로 넘어가면,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소련이 미국을 따라잡을 시점이 10년이나 미뤄졌어요. 계속해서 개정본을 살펴보면, 따라잡는 시점이 계속해서 미뤄지고 결국에는 그의 책에서 그 수치가 사라지게 되었죠.
지금 학생들에게 소련이 미국을 추월할 거라고 말하면 학생들이 당황하겠죠. 하지만 예를 들어 60년대에는 소련이 로켓 같은 아주 좁은 기술 분야에서 엄청난 성과를 냈어요. 소련은 최초의 우주인을 쏘아 올렸고, CIA를 속였고, 모든 경제학자를 속였고, 심지어 자신들의 지도부마저 속였죠. 흐루시초프가 “당신들을 묻어 버리겠다.”고 말한 걸 생각해보세요.
소련의 경제 모델은 효력이 있었고, 실제로 1920년대 첫 5개년 계획부터 1970년대 중후반까지의 약 50년 간 이 경제 모델은 효과를 발휘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중국과 소련의 경험에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저는 이 경험이 우리가 착취적 성장이라고 부르는 시기에 이것이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제도적 기반을 고려하지 않은 채 말이죠.
그렇다면 소련의 성장은 왜 일시적이었을까요? 왜 저는 제 연구에서 중국의 경제성장 역시 일시적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걸까요? 제 관점은 아주 간단하며, 세계사가 가르쳐준 교훈이기도 하죠. 번영을 하기 이해서는 포용적 경제제도가 필요하지만, 소수 엘리트의 변덕에 따라 포용적 경제제도를 가질 수는 없다는 겁니다.
액턴(Acton) 경의 유명한, 자주 인용되는 말은 이 점을 아주 잘 요약해서 보여줍니다.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절대적인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말이죠. 지금 중국이 바로 그런 상황입니다. 기본적으로 중국에는 시진핑 주석의 독재 체제가 존재합니다. 그는 영원히 권력을 유지할 것이며, 중국의 역사를 살펴보기만 해도 그 끝이 어떻게 될지, 그리고 경제에 좋지 않을 거라는 점을 알 수 있지요.
중국 얘기가 나오면 사람들은 “아, 이번엔, 이번엔 다르다”고 말하죠. 그럴 수도 있어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적 맥락이 완전히 다르거든요. 서구적 맥락이 아니라 유교적 맥락이죠. 문화적 배경이 매우 다르고, 액턴 경의 격언이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중국에서는 권력이 부패를 초래하지 않을 수도 있죠. 이것은 논의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중국이 다를 것이라는 주장의 공통적 문화적 논점은 중국에는 능력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다는 점입니다. 공자는 ‘논어’에서 능력 있고 재능 있는 자를 등용하라고 말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는 중국과 서구 세계 간의 놀라운 차이점입니다. 중국뿐 아니라 한국에도 경쟁적인 과거제도를 통해 선발된 전근대적 엘리트 계층이 있었잖아요?
그리고 저는 또 마윈(Jack Ma)도 떠오릅니다. 1980년대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던 시절, 그는 기업가 정신과 혁신의 첫 물결을 상징하는 인물이었죠. 그런데 마윈에게 무슨 일이 있었지요? 정부 규제에 대해 아주 온건한 비판을 했을 뿐인데, 사라졌죠. 거의 스탈린식 방식으로 사라졌어요.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그렇게 사라질 수 있다면, 그건 포용적 경제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도와 번영 간의 연관성입니다. 포용적 경제제도가 혁신과 번영을 창출합니다.
그런데 포용적 경제제도를 갖추려면 정치적으로 포용적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정치적 포용과 민주주의에서 다른 수많은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제 말은 경제성장과의 연관성이 정치적 포용의 유일한 이유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의사결정 방식으로서 민주주의가 본질적인 가치를 지녔다고 생각하시고, 저도 이에 당연히 동의합니다.
저는 경제학자라서 경제적 결과에 대해 논하는 것뿐입니다. 그 결과는 심오하고 논쟁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민주주의의 다른 많은 측면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이 맥락에서 평화와의 매혹적이고 강력한 연관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한국이나 세계 어느 지역의 정치 제도가 한국 사회의 복지나 그곳의 복지 제도에 미치는 결과에만 관심이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수십억 명의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있습니다. 이 제도가 세계적으로 어떤 시사점을 갖는지 생각해 보아야 하며, 여기서 꼭 염두에 두셔야 할 사회과학적 사실은 소위 '민주평화론'이라는 개념입니다. 민주주의는 자국 시민의 복지 수준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국가 간 전쟁 발생 가능성을 극적으로 낮춥니다. 민주주의 국가들이 서로 전쟁을 벌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럴 만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무책임한 지도자들이 개인적인 이유로 전쟁을 시작할 수 있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실제로 싸워야 할 시민들이 정책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줄어듭니다. 우리가 밝혀내 한 가지 사실은, 제 민주화 연구로 돌아가 보면, 일종의 기준 시점을 설정하여 각국의 민주화 과정을 표준화했을 때 1인당 소득 수준이 더 높은 단계로 전환되는 시점이 대략 이 기준 시점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 논문에서 우리는 다른 요소들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그 중 일부는 경제적 성과, 예를 들어 취학률 같은 것들이죠. 우리는 민주화가 다음 요소들과 뚜렷한 연관성을 가졌음을 발견했습니다. 교육 수준 향상, 높은 취학률, 낮은 아동 사망률 같은 요소 말이죠. 논문의 주제는 아니지만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게 있습니다. 우리는 민주화가 갈등 수준 감소와도 뚜렷한 연관성을 가졌음을 알아냈습니다. 폭동 및 폭력 사건 발생률 감소 등이죠. 즉, 정치적 포용의 결과로 사회의 갈등에 대한 취약성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는 것이죠.
또한 우리는 전쟁 발생도 줄어든다는 점을 밝혀냈습니다. 따라서 민주화의 결과 각국은 대외적 갈등에 덜 관여하게 됩니다. 이것은 제가 말했던 민주적 평화의 개념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에는 다양한 메커니즘이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도자에게 민주적 책임이 지워지는 국가일수록 전쟁을 시작할 가능성이 훨씬 낮아질 수 있습니다. 국민이 고통받을 것이므로, 국민이 그러한 결정을 통제하기 때문이죠. 정치학자들이 국제관계 분야에서 밝혀낸 일련의 사실은 바로 민주주의 국가가 실제로 전쟁에서 훨씬 더 많이 승리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가로축은 ‘정치체 점수'라고 불리는 특정한 민주주의 지표인데, 가장 비민주적인 상태를 -10으로, 가장 민주적인 상태를 +10으로 봅니다. 그리고 이 그래프는 단순히 전쟁에서 승리할 확률을 나타냅니다. 좌측의 도표 2를 보시죠. 도표 1을 좌측에, 도표 2를 우측에 배치했어야 했지만, 저는 전쟁을 시작한 국가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전쟁을 시작한 국가가 승리할 확률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문제죠.
함수는 민주주의입니다. 어떤 이유로든 전쟁을 시작할 때 그 국가가 더 민주적일수록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거죠. 이해되실까요? 제가 아까 민주주의 국가들은 서로 거의 싸우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비민주주의 국가들과는 싸웁니다. 여기서는 주로 그 현상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저희 연구에서 민주주의에 대해 논할 때 저희는 민주주의를 0과 1, 즉 민주주의 아니면 독재주의로 보았습니다.
이건 좀 더 섬세한 척도입니다. -10부터 +10까의 이 척도는 각국의 민주화 정도를 반영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여기엔 더 많은 변이가 있지만, 어쨌든 핵심은 민주주의 국가가 전쟁을 시작했을 때 그 국가의 민주주의가 더 발달했을수록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거죠. 그리고 우측 그래프는 전쟁을 시작한 국가가 아니라 공격의 대상이 된 국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그래프가 보여주는 것은 공격의 대상이 된 국가가 더 민주적일수록 그 국가가 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어떤 방식으로 보든 민주주의 국가가 전쟁에서 승리할 확률이 더 높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민주주의 국가가 시민들의 지지를 훨씬 더 많이 얻기 때문입니다. 국가가시민들에게 책임을 지기 때문에 시민들이 갈등에 참여하려는 의지가 훨씬 더 강합니다. 이해되실까요?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은 집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역량이 훨씬 더 뛰어납니다. 그러니 민주주의 국가와 싸우고 싶지 않죠. 민주주의 국가들은 전쟁을 치르고 승리하는 데 매우 능합니다. 독재 국가들보다 훨씬 더 그렇죠.
제가 말씀드렸듯 이것이 유일한 메커니즘은 아니지만, 이러한 메커니즘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더 나은 데이터가 있는 메커니즘 중 하나인 거죠. 이해되실까요?
그러니까 민주주의는 내부적으로 일어나는 일뿐 아니라 평화, 평화에 대한 이런 결과들, 즉 훨씬 더 광범위한 요소와 연관성을 갖는 것입니다.
이제 한국과 민주주의에 대해 조금 말씀드리며 오늘 제 발표를 마무리해 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으니까요.
아주 최근에 계엄을 선포하려는 시도가 있었잖아요.
제 정치학자 동료들이 말하는 '민주주의의 후퇴'의 한 사례라고 할 수도 있겠죠. 물론 한국은 중국과 북한, 러시아 같은 비민주주의적 국가에 둘러싸여 있어 비민주적 정권들과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죠.
그리고 전세계적으로도 민주주의가 도전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이 이유를 생각할 때면 저의 전 동료인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이 35년 전에 지적했던 사실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는 민주주의는 일종의 파도처럼 밀려온다고 말했죠. 그는 19세기부터 살펴보기 시작했죠.
예를 들어 제 조국 영국의 민주화는 19세기에 이루어졌는데, 1832년 최초의 선거법 개정을 시작으로, 이후 1860년대와 1880년대에 추가적인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었고, 1919년과 1928년에 남성 참정권과 여성 참정권이 도입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서유럽 지역, 즉 독일, 벨기에, 스칸디나비아에서도 같은 기간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있었죠. 그리고 상당수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도 민주화되고 있었죠.
그런 뒤 헌팅턴이 역(逆)물결이라고 부른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국가들이 물결처럼 움직이다가, 1930년대에 역물결이 온 거죠. 민주주의가 붕괴했습니다.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독일과 서유럽에서도 붕괴했어요. 2차세계대전 후에는 또 다른 민주화의 물결이 왔고, 그 다음 역물결이 왔어요.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그리고 독립 후 아프리카에서도 민주주의가 쿠데타로 무너졌죠.
그리고 1990년대에 또 다른 물결이 일어났죠. 그래서 그가 이것을 세 번째 물결, 제3의 물결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 시작은, 제3의 물결에 속한 국가는 어디였을까요? 한국도 제3의 물결에 속하고, 필리핀, 라틴 아메리카 전역,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전역에서 제3의 물결이 어느 정도 추진력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헌팅턴은 이에 대해 뭐라고 말했을까요? 기본적으로 우리는 또 다른 역물결을 경험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헌팅턴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살아 있었다면 지금 아마 이렇게 말했을 거예요. 자, 이제 또 다른 역물결이 일어날 시점이 됐다고 말이죠.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역물결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헌팅턴은 연구에서 이 현상의 원인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지금 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걸까요? 역물결이 불고 있는 거죠. 제가 보여드렸듯 한국인의 생활 수준을 놀라울 정도로 향상시킨 민주주의가 왜 도전을 받고 있을까요? 데이터는 압도적인데요, 왜 도전받고 있을까요
글쎄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일부는 특이한 이유겠지만, 일부는 체계적인 문제라고 봅니다. 헌팅턴의 연구에서는 그 메커니즘이 명확하지 않았지만, 민주화가 진행될 때, 제가 라틴 아메리카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민주화 물결에 대해 연구한 경험이 많아서 알게 된 것인데, 민주화의 물결이 일어날 때, 민주주의는 너무 많은 것을 약속합니다. 민주주의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겠다고 약속하잖아요. 실제로도 사람들의 삶에 도움이 되고, 좋은 일도 합니다. 제가 보여드렸듯이요. 하지만 기대치가 문제라는 거죠. 기대가 너무 높아서 민주주의는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고, 그러면 사람들은 대안을 살펴보고, 대안을 평가하려 하죠.
왜 이것이 시간에 따라 상관관계를 보일까요? 글쎄요, 이런 물결들은 상관관계가 있고, 민주화도 상관관계가 있으며, 실망도 어떤 의미에서는 상관관계가 있거든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우리가 지금 역물결을 경험하고 있다는 거죠. 이 역방향 물결이 전세계에서 민주주의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좋은 소식이라면 우리가 이전에도 이런 상황을 겪었고, 결국 극복해냈으며, 그 뒤에 제4의 민주주의 물결이 찾아왔다는 점입니다. 한국에서도 잘 아시겠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도 분명히 알고 계셨을 겁니다. 여기서 안주할 이유가 전혀 없어요. 이런 일들은 사람들이 만들어내고, 사람들이 싸워서 이루어내는 겁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일생 동안 그랬듯이 말이죠. 그러니까 이것은 결정론적인 예측이 아닙니다.
제가 착취적 제도에서 포용적 제도로의 전환에 대해 설명드렸던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사람들이 집단적 행동을 통해 만들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도전받고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으므로, 저 같은 사람이나 김대중평화센터 같은 기관에게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가 가져다주는 온갖 이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항상 못 가본 길이 더 좋아 보이지만, 민주주의는 사람들의 경제적 성과를 엄청나게 개선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말씀드렸듯 민주주의는 또한 세계 평화를 엄청나게 증진했습니다. 우리는 2차세계대전 이후 세계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기 중 하나를 살아왔고, 그 이유 중 하나는 민주주의가 확산되었기 때문이며, 민주주의와 함께 평화가 확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제가 서울에 갈 때 이걸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정말 이해하기 어렵거든요. 제가 알기로는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현재 상황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고,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계엄을 시도하게 된 배경에 대한 일종의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불안감은 사람들이 도전과 문제점을 평가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게 하는 데에 많은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민주주의로의 전환 이후 국가를 재건하셨고,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한국이 국가를 재건했죠. 한국은 그 역동성 속에서 더 강해졌습니다.
저는 이러한 고조된 분위기로 제 발표를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최근 2025 행복도시 지수에 주목하게 되었어요.
플라톤은 “시민이 그런 모습이기 때문에 도시가 그런 모습인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죠. 이건 한국의 이야기예요. 제가 들었던 예를 떠올려 보세요. 한국에서 정치적 포용을 만들어낸 요인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세요.
그건 국민들이었습니다.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사회를 위해 투쟁하려는 국민의 결의가 한국의 정치적 포용을 이끌어 냈어요. 자, 이 지수에 따르면, 여러분이 믿거나 말거나, 서울은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행복한 도시입니다. 앤트워프, 싱가포르, 취리히, 그리고 항상 상위권에 있는 코펜하겐 다음이죠. 서울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 중 하나예요. 그리고 외국인으로서 말하자면, 저는 서울이 정말 매혹적이고, 개방적이고, 역동적이고, 창의적이고,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가는 것은 항상 저에게 큰 기쁨입니다. 그리고 서울에도 낙관적인 사람이 누군가는 있겠지요.
다시 한 번 매우 뜻깊은 이 포럼에 저를 초대해 주신 주최측에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대중평화센터 같은 기관들의 활동이 사회의 번영과 세계 평화의 확산 및 유지에 민주주의가 갖는 중요성을 한국인과 세계 시민들에게 상기시키는 데 얼마나 중요한 공헌을 하고 있는지를 강조해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