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제임스 로빈슨 교수 기조 강연 요약
※시카고대 교수, 2024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한국의 경제성장은 경제적 현상인 동시에 문화적 현상
-포용적 경제제도가 혁신과 번영을 창출...한국에서 ‘혁신’은 K-뷰티, K-드라마, K-팝, 그리고 K-민주주의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나
-포용적 경제제도는 정치적 과정의 결과...김대중 대통령 임기 때 민주주의와 포용적 경제제도 시작...IMF 극복하기 위한 금모으기 운동...한국인이 당시 민주화 과정에서 구축되고 있던 포용적 사회에 진정으로 동참하기 원했고 그러한 사회에 기여하고자 했던 것을 보여주는 사례...정치적 포용의 결과 포용적 경제제도로 전환했고 결국 번영한 OECD 국가 돼
-북한은 착취적 경제제도...빈곤 초래
-민주주의는 자국 시민의 복지 수준을 향상시킬 뿐 아니라 국가간 전쟁 발발 가능성을 극적으로 낮춰...민주주의 국가들이 서로 전쟁을 벌이는 경우는 거의 없어...민주주의 국가가 전쟁에서 훨씬 더 많이 승리해
-19세기~20세기 초 1차 민주주의 물결, 2차대전 후 2차 민주주의 물결, 1990년대 3차 민주주의 물결...매번 민주주의 물결 후에는 역(逆)물결 닥쳐와...지금 세계는 역물결의 시대...역방향 물결이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에 도전하고 있어...개방과 포용을 위해 투쟁하는 국민이 제4의 민주주의 물결 만들어낼 것이라는 점을 김대중 대통령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
-우리는 민주주의가 도전받는 세상에서 살고 있어...그러나 민주주의는 경제적 성과와 세계평화를 엄청나게 증진시켰어
-한국인들 현재 상황에 대해 많은 고민하고 있고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계엄을 시도한 배경에 대해 불안감 갖고 있어...김대중 대통령, 민주주의로 전환 후 국가를 재건했고 한국은 그 역동성 속에서 더 강해져...한국에서 정치적 포용을 만들어 낸 요인은 국민...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사회를 위해 투쟁하려는 국민의 결의가 한국의 정치적 포용을 이끌어내
■포용적 경제제도와 혁신, 번영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 민주화 운동의 주역 중 한 분이셨습니다. 한국에서 투옥과 망명, 사형선고를 겪고, 수십 년간 민주주의와 포용, 정치적,·경제적 포용을 위해 투쟁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연구라기보다는 그의 생 자체였던 제 연구에 대해 여러분께 말씀드릴 수 있다는 것은 저에게 큰 영광입니다.
한국의 경제 기적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한국의 경제적 기적은 거의 한 세대라는 매우 짧은 기간에 모든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세계 경제사에서 전례 없는 사건이었죠. 경제학자는 경제 성장을 이끄는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할까요?
1950년대 로버트 솔로(Robert Solow)의 발언 이후, 경제학자들은 한국에서 일어난 놀라운 변화와 같은 경제 성장을 이끄는 요인이 기본적으로 ‘혁신’이라는 데 동의했습니다. 한국은 어떻게 상대적으로 낮은 불평등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혁신적이고 경제적으로 역동적인 사회가 되었을까요? 바로 포용적 경제제도를 구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단순히 경제적 현상에 그치지 않습니다. 물론 경제적 현상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문화적 현상이기도 하죠. 그리고 이 두 가지는 당연히 상호 연관되어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웨스턴, 할리우드, 코카콜라, 청바지 등 문화 전체가 미국의 경제적 성공, 확장과 연결되어 있지요.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혁신은 다양한 영역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데, 한국에서도 정확히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K-뷰티, K-드라마, K-팝, 그리고 오늘 주제와 관련된 K-민주주의까지 말이죠.
포용적 경제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저희 책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아시모글루(Acemoglu) 교수와 저는 포용적 경제제도를 그 반대 개념인 착취적 경제제도와 대조하였습니다.
착취적 경제 제도의 예는 무엇일까요? 제가 한반도를 매우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한반도에 포용적 제도와 착취적 제도가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정확히 착취적 경제 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북한의 경제제도는 포괄적 인센티브와 기회를 창출하지 않죠. 북한의 제도는 집권당과 지배 세력과 연관된 사람들에게만 인센티브와 기회를 제공하며,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은 인센티브와 기회에서 완전히 배제됩니다. 이것이 빈곤을 초래하죠. 포용적 경제 제도는 혁신과 번영을 창출합니다.
자, 그런데 이런 제도들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예컨대 한국은 왜 북한보다 더 포용적인 경제 제도를 갖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 또한 명백합니다. 이는 정치적 과정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착취적 제도라고 부르는 체제 아래서도 성장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성장은 일시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1970년대와 1980년대의 한국도 그런 상황이었죠. 앞서 특허 데이터에서 보여드린 한국에서의 진정한 혁신의 급격한 확대는 민주주의로의 전환과 진정한 포용적 제도가 확립된 이후에야 이루어졌습니다.
이해되실까요? 이것은 선거 민주주의 지수인데, 1980년대 후반부터 민주주의로의 거국적인 전환이 시작됐지만, 실제로 민주주의가 공고히 자리잡은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마침내 정권을 잡은 1990년대 후반, 1998년의 일이었죠.
포용의 결실은 다양합니다. 제가 K-팝이나 K-뷰티 등에 대해서도 언급했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예시 중 하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임기 중에 일어난 변화입니다. 약간 불명확한 부분이 있어 보이지만, 일부 사람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 변화를 시작했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이 문제를 깊이 연구하지는 않았으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을 때, 즉 대통령직을 맡았을 때, 한국은 금융위기를 겪었고 IMF 시기를 겪었죠. 한국이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했냐 하면 국민들이 금을 내놓았습니다. IMF에 돈을 갚기 위해 각자 금을 내놓은 거죠.
정말 놀라운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영국이나 미국이라면 이런 일이 가능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겠어요. 이것은 한국인이 사회와 자신을 얼마나 깊이 동일시하는지를 말해준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한국인이 당시 민주화 과정에서 구축되고 있던 포용적 사회에 진정으로 동참하고자 했으며, 그 사회에 기여하고자 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정말 매력적이죠.
간단히 말해서 이론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북한에서는 제가 '착취적 경제제도'라고 부르는 것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는데, 이는 빈곤을 초래합니다. 북한이 착취적 경제제도를 가진 이유는 착취적 정치제도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정치적 포용의 결과 포용적 경제제도로 전환했고, 결국 번영한 OECD 국가가 되었죠. 이해되실까요? 이 도표는 매우 단순화되어 있지만, 사실 다양한 사회의 역학관계와 번영이 착취적 경제,·정치제도에서 포용적 경제제도로의 전환을 수반함을 보여줍니다. 저희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그러한 전환의 강제 변수라 할 수 있는 것은 정치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을 생각해 보세요. 그가 무엇을 했고, 어떻게 살았는지를요. 그는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고, 독재를 무너뜨리고, 정치 체제를 개방하며, 국민의 참여와 대표성을 보장하기 위해 싸우는 데 일생을 바쳤습니다. 이게 핵심이죠. 소련 붕괴 이후 우크라이나, 폴란드, 동유럽에서 민주주의가 등장한 것, 영국에서 민주주의가 대두된 것도 다 이렇게 이루어진 것이죠. 경제적 변화를 주도하는 이러한 정치적 힘,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사회 구성원들이 조직화되어 변화를 이뤄내고 정치적 포용을 이뤄냄으로써 경제적 포용과 경제 성장을 심화시키는 것 말이죠.
포용적 경제제도가 혁신과 번영을 창출합니다.
그런데 포용적 경제제도를 갖추려면 정치적으로 포용적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정치적 포용과 민주주의에서 다른 수많은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제 말은 경제성장과의 연관성이 정치적 포용의 유일한 이유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의사결정 방식으로서 민주주의가 본질적인 가치를 지녔다고 생각하시고, 저도 이에 당연히 동의합니다.
저는 경제학자라서 경제적 결과에 대해 논하는 것뿐입니다. 그 결과는 심오하고 논쟁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민주주의의 다른 많은 측면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이 맥락에서 평화와의 매혹적이고 강력한 연관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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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평화
여기서 꼭 염두에 두셔야 할 사회과학적 사실은 소위 '민주평화론'이라는 개념입니다.
민주주의는 자국 시민의 복지 수준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국가 간 전쟁 발생 가능성을 극적으로 낮춥니다. 민주주의 국가들이 서로 전쟁을 벌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럴 만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무책임한 지도자들이 개인적인 이유로 전쟁을 시작할 수 있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실제로 싸워야 할 시민들이 정책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줄어듭니다. 우리가 밝혀낸 한 가지 사실은, 제 민주화 연구로 돌아가 보면, 일종의 기준 시점을 설정하여 각국의 민주화 과정을 표준화했을 때 1인당 소득 수준이 더 높은 단계로 전환되는 시점이 대략 이 기준 시점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중 일부는 경제적 성과, 예를 들어 취학률 같은 것들이죠. 우리는 민주화가 다음 요소들과 뚜렷한 연관성을 가졌음을 발견했습니다. 교육수준 향상, 높은 취학률, 낮은 아동 사망률 같은 요소 말이죠. 논문의 주제는 아니지만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 게 있습니다. 우리는 민주화가 갈등수준 감소와도 뚜렷한 연관성을 가졌음을 알아냈습니다. 정치적 포용의 결과로 사회의 갈등에 대한 취약성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는 것이죠.
또한 우리는 전쟁 발생도 줄어든다는 점을 밝혀냈습니다. 따라서 민주화의 결과 각국은 대외적 갈등에 덜 관여하게 됩니다. 이것은 제가 말했던 민주적 평화의 개념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에는 다양한 메커니즘이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도자에게 민주적 책임이 지워지는 국가일수록 전쟁을 시작할 가능성이 훨씬 낮아질 수 있습니다. 국민이 고통받을 것이므로, 국민이 그러한 결정을 통제하기 때문이죠. 정치학자들이 국제관계 분야에서 밝혀낸 일련의 사실은 바로 민주주의 국가가 실제로 전쟁에서 훨씬 더 많이 승리한다는 사실입니다.
함수는 민주주의입니다. 어떤 이유로든 전쟁을 시작할 때 그 국가가 더 민주적일수록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거죠. 이해되실까요? 제가 아까 민주주의 국가들은 서로 거의 싸우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비민주주의 국가들과는 싸웁니다. 여기서는 주로 그 현상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과 민주주의
이제 한국과 민주주의에 대해 조금 말씀드리며 오늘 제 발표를 마무리해 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으니까요.
아주 최근에 계엄을 선포하려는 시도가 있었잖아요.
제 정치학자 동료들이 말하는 '민주주의의 후퇴'의 한 사례라고 할 수도 있겠죠. 물론 한국은 중국과 북한, 러시아 같은 비민주주의적 국가에 둘러싸여 있어 비민주적 정권들과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죠.
그리고 전세계적으로도 민주주의가 도전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이 이유를 생각할 때면 저의 전 동료인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이 35년 전에 지적했던 사실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는 민주주의는 일종의 파도처럼 밀려온다고 말했죠. 그는 19세기부터 살펴보기 시작했죠.
예를 들어 제 조국 영국의 민주화는 19세기에 이루어졌는데, 1832년 최초의 선거법 개정을 시작으로, 이후 1860년대와 1880년대에 추가적인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었고, 1919년과 1928년에 남성 참정권과 여성 참정권이 도입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서유럽 지역, 즉 독일, 벨기에, 스칸디나비아에서도 같은 기간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있었죠. 그리고 상당수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도 민주화되고 있었죠.
그런 뒤 헌팅턴이 역(逆)물결이라고 부른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국가들이 물결처럼 움직이다가, 1930년대에 역물결이 온 거죠. 민주주의가 붕괴했습니다.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독일과 서유럽에서도 붕괴했어요.
2차세계대전 후에는 또 다른 민주화의 물결이 왔고, 그 다음 역물결이 왔어요.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그리고 독립 후 아프리카에서도 민주주의가 쿠데타로 무너졌죠.
그리고 1990년대에 또 다른 물결이 일어났죠. 그래서 그가 이것을 세 번째 물결, 제3의 물결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 시작은, 제3의 물결에 속한 국가는 어디였을까요? 한국도 제3의 물결에 속하고, 필리핀, 라틴 아메리카 전역,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전역에서 제3의 물결이 어느 정도 추진력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헌팅턴은 이에 대해 뭐라고 말했을까요? 기본적으로 우리는 또 다른 역물결을 경험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헌팅턴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살아 있었다면 지금 아마 이렇게 말했을 거예요. 자, 이제 또 다른 역물결이 일어날 시점이 됐다고 말이죠.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역물결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헌팅턴은 연구에서 이 현상의 원인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지금 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걸까요? 역물결이 불고 있는 거죠. 제가 보여드렸듯 한국인의 생활 수준을 놀라울 정도로 향상시킨 민주주의가 왜 도전을 받고 있을까요? 데이터는 압도적인데요, 왜 도전받고 있을까요
글쎄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일부는 특이한 이유겠지만, 일부는 체계적인 문제라고 봅니다. 헌팅턴의 연구에서는 그 메커니즘이 명확하지 않았지만, 민주화가 진행될 때, 제가 라틴 아메리카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민주화 물결에 대해 연구한 경험이 많아서 알게 된 것인데, 민주화의 물결이 일어날 때, 민주주의는 너무 많은 것을 약속합니다. 민주주의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겠다고 약속하잖아요. 실제로도 사람들의 삶에 도움이 되고, 좋은 일도 합니다. 제가 보여드렸듯이요. 하지만 기대치가 문제라는 거죠. 기대가 너무 높아서 민주주의는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고, 그러면 사람들은 대안을 살펴보고, 대안을 평가하려 하죠.
왜 이것이 시간에 따라 상관관계를 보일까요? 글쎄요, 이런 물결들은 상관관계가 있고, 민주화도 상관관계가 있으며, 실망도 어떤 의미에서는 상관관계가 있거든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우리가 지금 역물결을 경험하고 있다는 거죠. 이 역방향 물결이 전세계에서 민주주의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좋은 소식이라면 우리가 이전에도 이런 상황을 겪었고, 결국 극복해냈으며, 그 뒤에 제4의 민주주의 물결이 찾아왔다는 점입니다. 한국에서도 잘 아시겠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도 분명히 알고 계셨을 겁니다. 여기서 안주할 이유가 전혀 없어요. 이런 일들은 사람들이 만들어내고, 사람들이 싸워서 이루어내는 겁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일생 동안 그랬듯이 말이죠. 그러니까 이것은 결정론적인 예측이 아닙니다.
제가 착취적 제도에서 포용적 제도로의 전환에 대해 설명드렸던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사람들이 집단적 행동을 통해 만들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도전받고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으므로, 저 같은 사람이나 김대중평화센터 같은 기관에게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가 가져다주는 온갖 이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항상 못 가본 길이 더 좋아 보이지만, 민주주의는 사람들의 경제적 성과를 엄청나게 개선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말씀드렸듯 민주주의는 또한 세계 평화를 엄청나게 증진했습니다. 우리는 2차세계대전 이후 세계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기 중 하나를 살아왔고, 그 이유 중 하나는 민주주의가 확산되었기 때문이며, 민주주의와 함께 평화가 확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제가 서울에 갈 때 이걸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정말 이해하기 어렵거든요. 제가 알기로는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현재 상황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고,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계엄을 시도하게 된 배경에 대한 일종의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불안감은 사람들이 도전과 문제점을 평가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게 하는 데에 많은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민주주의로의 전환 이후 국가를 재건하셨고,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한국이 국가를 재건했죠. 한국은 그 역동성 속에서 더 강해졌습니다.
한국에서 정치적 포용을 만들어낸 요인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세요. 그건 국민들이었습니다.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사회를 위해 투쟁하려는 국민의 결의가 한국의 정치적 포용을 이끌어 냈어요.
서울은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행복한 도시입니다. 앤트워프, 싱가포르, 취리히, 그리고 항상 상위권에 있는 코펜하겐 다음이죠. 서울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 중 하나예요. 그리고 외국인으로서 말하자면, 저는 서울이 정말 매혹적이고, 개방적이고, 역동적이고, 창의적이고,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가는 것은 항상 저에게 큰 기쁨입니다. 그리고 서울에도 낙관적인 사람이 누군가는 있겠지요.
다시 한 번 매우 뜻깊은 이 포럼에 저를 초대해 주신 주최측에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대중평화센터 같은 기관들의 활동이 사회의 번영과 세계 평화의 확산 및 유지에 민주주의가 갖는 중요성을 한국인과 세계 시민들에게 상기시키는 데 얼마나 중요한 공헌을 하고 있는지를 강조해 드리고 싶습니다.